
겨울 방학이면 늘 발 디딜 틈 없던 대치동 학원가.
아이 손 잡고 학원 골목을 걷는 부모들로 붐비던 그 거리가,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방학인데도 아이들 목소리가 줄었고,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들도 눈에 띄게 적어졌습니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조용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과학 학원은 끊었어요.”
“예체능은 청소년센터로 돌렸고요.”
“국영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정리했어요.”
대치동에서, 그것도 겨울 방학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불안한 게 아니라, 보내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월급의 70%가 학원비로 나가는 현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이거였습니다.
“계산해보니까 월급의 70%가 학원비더라고요.”
맞벌이 가정이었고, 아이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논술까지 보내다 보니 월 학원비가 300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합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3,700만 원. 조기유학 비용과 맞먹는 금액이죠.
이쯤 되면 교육 투자라기보다는 가계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입니다. 아무리 자녀를 위한 지출이라 해도, 생활비와 노후 준비까지 동시에 감당하기엔 한계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부모들은 ‘어디를 줄일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조정 대상이 된 게 국영수를 제외한 과목들이었습니다.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어”
학원을 끊는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건 아닙니다.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비용 자체보다도 죄책감입니다.
“아이한테 미안해요.”
“뒤처질까 봐 걱정돼요.”
“다른 집 애들은 다 다니는데 우리만 빼는 것 같아서요.”
특히 과학이나 논술처럼 ‘나중에 격차가 벌어질 것 같은 과목’을 끊을 때, 부모 마음은 더 무너집니다. 하지만 고물가와 고정비 부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택지가 없어요.”
사교육비, 5년 만에 감소했다는 의미
이 변화는 개인의 체감만이 아닙니다.
공식 통계에서도 사교육비 지출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을 기준으로 학원 교육비는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중·저소득층 가구에서 감소 폭이 컸습니다. 그동안은 아무리 힘들어도 학원비만큼은 줄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대치동처럼 교육열이 상징적인 지역에서조차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는 건, 사교육 시장 전체가 구조적인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육비와 노후, 동시에 지킬 수 있을까
많은 부모들이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아이 학원비를 이렇게 쓰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걸까?”
“내 노후가 무너지면, 결국 아이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은퇴를 앞둔 40~50대 부모들에게 사교육비는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노후를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입니다. 자녀가 독립하기 전까지 계속 나가는 고정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원 하나를 줄이고, 그 비용을 자녀 명의의 저축이나 투자 계좌로 돌리는 부모들도 늘고 있습니다. 당장의 성적 향상 대신, 장기적인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주겠다는 선택입니다.
이제 교육도 ‘포트폴리오’의 문제
예전에는 교육비를 줄이는 게 곧 포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무작정 많이 쓰는 교육이 아니라,
효율적인 교육과 지속 가능한 가계 운영,
그리고 부모와 자녀 모두의 미래를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강의, 공공 교육 프로그램, EBS 같은 대안도 점점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습니다. 절약한 비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선택은 ‘손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투자일 수 있습니다.
“학원을 끊은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 겁니다”
요즘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포기한 게 아니에요.”
“방식을 바꾼 거예요.”
대치동이 조용해진 이유는 교육을 포기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방향을 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선택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아이와 부모 모두의 미래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부모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마주한 현실이 되었습니다.